2024년 3월 9일 (토)
3월 9일의 일기
오랜만에 일기를 쓴다. 쇼펜하우어의 책을 보다가 정리해두었던 내용을 읽다가 일기를 쓰고 싶어 졌다. 외부에서 자극만 받고 그것을 제대로 소화해 두지 않으면 분별력이 사라진다는 내용이 그것이었다.
오늘은 어둠속의 대화라는 체험형 전시를 다녀왔다. 여러부분에서 인상적인 경험이었다. 전시를 갔던 이유는 새로운 경험을 해보고 싶어서였다. 여자친구한테 들었던, 뇌가 신선한 자극을 생경한 경험을 통해 받게되면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하는 얘기 때문에 새로운 경험을 하고 싶었다. 결과적으로 굉장히 좋은 경험이었다.
구체적인 내용은 스포일러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여기에 쓰진 않겠다. 추상적으로 간단히 설명하면, 완벽하게 빛이 차단된 공간에서 100분 정도 어떠한 체험들을 하는 것이었다. 시각을 사용하지 못하기 때문에 나머지 네개의 감각을 주로 사용해야 했다.
명상을 통해 현재에 감각을 집중하는 것이 좋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경험을 통해 평상시 감각의 차원을 넘어서는 감각 체험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결과적으로 청각/후각/미각/촉각에 대한 감각들이 시각으로 인해 평상시에는 나에게 관심을 많이 받지 못한다는 것을 깊게 깨달았다. 눈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는 다른 감각들에 더 의존할 수 밖에 없었다.
가장 크게 느꼈던 것은 사람들의 목소리였다. 8명이서 같이 체험을 하게 되는데 길을 안내해주는 로드마스터라는 사람이 중간중간 가이드도 하면서 스몰토크도 하여 다른 사람들이 얘기하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어떤 젊은 여자의 목소리 내 뒤에 있던 남자의 목소리 들을 실제 눈을 사용할 수 있을때 보다 더 집중해서 듣게 된다.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단순히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 굉장히 안정적인 기분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초반에 빛을 완전 차단했을때에 눈을 떠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상황을 처음겪어보는 것이라서 약간 폐쇄공포증 두려움이 생겼었는데, 로드마스터가 먼저 말을 걸어주고 손을 잡아서 길을 이끌어 주는 것을 경험하면서 두려움이 말끔히 사라졌다. 미각이나 촉각등의 다른 걈각들을 사용하는 체험도 하게 되는데, 이 또한 평상시보다 훨씬 깊게 느껴진다.
끝나고 나서 다시 빛을 볼 수 있었을때, 주로 시각에만 의존하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고 다른 감각들은 무뎌져 감을 느낄 수 있었다.
일상생활을 할 때 우리가 얼마나 시각에 의존하는지를 그리고 반대로 얼마나 다른 감각을 실제보다 덜 느끼는지를 알게 되었다. 또한, 간접적으로 시각장애인들의 삶이 어떤 모습일지에 대하여 생각해보게 되었다. 친절한 목소리 하나와 작은 제스쳐들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도움과 인간미를 느끼게 해줄 수 있을지를 깨닫게된 좋은 경험이었다. 명상을 훈련하면서 현재 감각에 주의를 집중하려고 노력을 열심히 한다고 생각했었는데, 이 체험을 해보니 나는 여전히 시각과 생각에 굉장히 깊게 빠져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건강한 눈을 갖고 있다는 것에 감사하면서, 이 엄청난 시각기능을 이용해 건강하지 않은 컨텐츠나 시간낭비하는 짓을 하지 말고 좀 더 좋은 곳에 사용하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몇시간이 지나고 나서 다시 시간낭비 컨텐츠를 보는 나의 미약한 의지력에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하루의 경험을 반추하고 생각을 정리하는 일기를 쓰고 싶었는데, 너무 정리가 안된 생각을 나열하는 것밖에 안되는 내 글쓰기 실력에도 기분이 좋지 않다.
그래도 글쓰기를 통해서 생각을 정리하려고 노력하는 모습 자체는 긍정적이라고 생각해야겠다.